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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세데도 몰랐는데…대승기신론소별기 최초 불어 번역”(불교신문 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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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여심 작성일15-11-03 16:03 조회1,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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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옥탑방서 연구 매진
원효스님 탄생 1400주년 맞아
2017년 단행본으로 출간 예정

“처음에 아베세데(abcd)도 모르고 왔는데 원효스님 저술을 현대 프랑스어로 소개하게 되다니 꿈만 같네요.” 지난 10월27일 광화문 인근의 한 찻집. 최근 프랑스 고등연구원(EPHE)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불교철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원호 씨<사진>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868년 설립된 프랑스 고등연구원은 현재 유럽에서 그 분야 최고 수준의 교수들이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국립 연구기관.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엄격한 선발과정을 통해 소수 정예의 신입생을 선발하며, 졸업 또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최 박사는 원효스님의 대표 저술인 <대승기신론소>를 연구한 논문으로 지난 4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존재론의 근거와도 같은 일심: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별기의 일심에 관한 연구, 해제와 번역’이다.

이 논문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7세기를 살았던 원효스님의 불교 언어가 최 박사의 손에서 불어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점이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에는 원효스님의 일심(一心)사상을 존재론의 근거로써 철학적으로 밝혀낸 부분과 대승기신론소와 별기를 번역한 불역본이 실려 있다. ‘대승기신론소별기’는 마명의 ‘대승기신론’의 주석서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주석서로 알려져 있으며, 원효스님 사상 전반을 꿰뚫는 핵심적 이론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저술이다. 

특히 별기 부분은 영어 보다 앞서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완역했다. 대승기신론소 또한 영문판이 이미 출간된 바 있지만, 불역본은 최 박사 논문이 처음이다. 세계적인 불교학자로 논문을 지도한 쟝 노엘 호베르 교수는 “프랑스 불교연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문헌학과 종교·철학적 사유체계를 동시에 보여준 논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 박사의 박사 논문이 빛을 보기까지는 9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원효스님의 저술이 7세기 불교한문인데다 한문이 지닌 다의성, 여기에 연기론적 논리구조, 동아시아 사상적 흐름과의 연관성 등이 야기한 어려움으로 정확한 번역에 애를 먹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어려움도 많았지만, 낡은 주택가 옥탑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최 박사는 “다들 어떻게 번역했냐고 물어오지만 원효스님을 만나고 저절로 힘이 생겨났다”면서 “한국에 있었다면 이미 주어진 언어개념에 기대어 편안히 공부했겠지만, 불교 용어 하나하나를 면밀히 사유하고 스님의 사유의 결을 충실히 따라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원효스님 탄생 1400주년이 되는 해인 2017년에 맞춰 자신의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낼 계획이다. 이미 프랑스와 독일의 저명 출판사들로부터 출판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책이 나오면 학술 연구자 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불교사상을 널리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 박사는 “일본이나 중국 불교 서적은 이미 상당한 양이 번역돼 나와 있지만 한국불교는 현지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 “내년부터 전체적으로 내용을 다시 한 번 가다듬은 다음 2017년도에 꼭 단행본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논문교정에 십시일반 도움을 보태준 프랑스 친구들에 대한 감사인사도 잊지 않았다. 최 박사는 “쟝 쟈끄 로베흔느(Jean-Jacques Lauvergne)를 비롯한 25여명의 박사 친구들이 각각 40여장씩 맡아 교정을 봐줬다”며 “친구들 도움이 없었다면 논문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박사는 한국의 사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있어서 원효스님 만한 사상가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 박사는 “원효스님의 저술은 현대 철학적 주제들과 만날 수 있는 무궁함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며 “이 훌륭한 보물을 제대로 세계에 소개하는 것은 젊은 학자들의 온전한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우리시대 언어로 원효스님을 밝혀내는데 더욱 주력하고 싶다”며 “앞으로 한국사상을 알릴 수 있는 훌륭한 불교문헌을 불어로 꾸준히 번역하는 한편 향후 ‘한국철학사’를 불어로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원호 박사는…

1969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00년에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2001년 9월 파리 소르본 대학에 입학, 2004년 9월 비교철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같은 해 10월 프랑스 고등연구원(EPHE)에 입학해 지난 4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년부터 연세대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불교철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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